[진균 01] 석조의 연금술사, 지의류: 복합 유기체의 탄생과 생존 전략

연구 부제: 도심 인공 기질에 정착한 지의류(Lichen)의 화학적 개척 기작 및 콘크리트 부식 메커니즘 분석


1. 서론: 도심 인공 기질의 생태적 불모성과 지의류의 개척적 지위

현대 도시의 물리적 외연을 형성하는 콘크리트 및 석조 구조물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극단적인 환경 부하를 지닌 초기 단계의 불모 기질(Primary substrate)이다. 특히 신축 콘크리트 표면은 시멘트의 수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수산화칼슘(Ca(OH)2)의 영향으로 pH 12.0 이상의 강알칼리성을 유지한다. 이는 일반적인 관속식물의 종자 발아와 정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생태적 장벽으로 작용하며, 지표면의 미생물 다양성을 극도로 단순화시킨다. 또한, 수분 보유력이 전무한 매끄러운 시멘트 마감재는 미생물의 콜로니 형성을 방해하는 물리적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극한의 환경적 제약 조건 하에서 유의미하게 영토를 확장하며 무기질의 고체 표면을 생화학적으로 해체하는 존재가 지의류(Lichen)이다. 지의류는 균류(Mycobiont)와 광합성 생물(Photobiont)이 결합한 복합 유기체로서, 인공 기질의 화학적 결합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생물학적 엔지니어링'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단순한 정착을 넘어 기질의 물리적 성질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며, 이는 도시 생태계의 비가역적인 천이(Succession) 과정의 시발점이 된다. 본 리포트에서는 지의류가 분비하는 2차 대사 산물인 지의산(Lichen acid)의 킬레이트 작용을 중심으로, 불모의 인공 표면이 유기 생태계의 시발점으로 전환되는 정밀 기작을 규명하고자 한다.

2. 본론: 공생 공학을 통한 자원 최적화와 생체 운영 시스템

지의류의 생존력은 균류와 조류 간의 정밀한 자원 분배 알고리즘에서 기인한다. 전체 생체 질량의 약 90% 이상을 점유하는 균류(주로 자낭균류, Ascomycota)는 직경 수 마이크로미터(µm) 단위의 미세 균사(Hyphae)를 조밀하게 직조하여 상부 피층(Upper cortex)을 형성한다. 이 구조는 외부의 물리적 충격과 강한 자외선(UV)으로부터 내부 시스템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대기 중의 습기를 포집하는 저수지의 기능을 수행한다.

피층 하부의 조류층(Algal layer)에 위치한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가공된 탄수화물을 균류에게 제공하며, 그 대가로 균류로부터 수분 및 무기 영양소를 공급받는다. 필자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지의류는 엽상체를 수축시켜 증산을 억제하는데, 이는 마치 정밀하게 설계된 '생체 기계'의 자동화된 절전 모드와 흡사하다. 이 과정에서 균류는 다당류 점액질을 분비하여 조류의 세포막이 급격한 건조로 인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러한 고도의 상호보완적 공생 기제는 도시 열섬 현상 속에서도 지의류가 수십 년간 생동력을 유지하게 하는 핵심적인 생체 운영체제(OS)라 할 수 있다.

콘크리트 매트릭스 내부에서 지의산이 칼슘 이온을 용출시키는 킬레이트 반응 과정과 지의류 엽상체의 수직 단면 구조(피층, 조류층, 수층, 가근)를 시각화한 전문 인포그래픽
[그림 1] 지의산에 의한 콘크리트 기질의 킬레이트 메커니즘 및 지의류 내부 생리 구조 모식도

3. 화학적 투쟁의 기제: 지의산(Lichen Acid)과 킬레이트 메커니즘의 심층 분석

지의류가 견고한 콘크리트 기질을 개척하는 핵심 화학 도구는 대사 과정에서 분비되는 지의산이다. 이들은 옥살산(Oxalic acid)을 비롯하여 우스닌산(Usnic acid), 레카노르산(Lecanoric acid) 등 수백 종의 특수한 유기 화합물을 합성하여 기질의 무기질 결합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주목해야 할 생화학적 공정은 킬레이트 작용(Chelation, 금속 이온을 집게처럼 포획하는 공정)이다.

지의산 분자는 콘크리트 내부의 결정 격자에 결합된 칼슘(Ca2+), 마그네슘(Mg2+), 알루미늄(Al3+) 등의 금속 이온을 포획하여 열역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수용성 복합체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의 물리적 강도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인 규산칼슘 수화물(C-S-H) 결정 구조는 화학적 결속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해체된다. 실제로 옹벽 표면을 손끝으로 훑어보았을 때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질감과 미세하게 부스러지는 시멘트 가루는, 지의산에 의해 칼슘 성분이 용출된 자리에 남은 '화학적 각인'이라 할 수 있다. 지의류는 이 미세 공극(Micro-pore) 사이로 균사를 침투시켜 팽창 압력을 가함으로써 기질의 물리적 파쇄를 가속화하는 이중 전술을 구사한다.

4. 현장 데이터 분석: 미세 조도 변형과 유기물 축적의 인과관계

서울 종로구 및 서초구 일대의 노후 옹벽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면 거칠기(Roughness) 측정 데이터에 따르면, 고착상 지의류(Crustose Lichen)가 서식하는 지점은 비서식 지역에 비해 표면 조도가 유의미하게(약 3.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노화에 의한 자연 부식이 아니라, 지의산이 기질 내부 수십 마이크로미터(µm) 깊이까지 능동적으로 침투하여 광물을 용해시킨 결과물이다.

이러한 미세 지형적 변화는 단순히 구조물을 파괴하는 열화 현상을 넘어 생태학적으로 거대한 전환점을 시사한다. 지의류에 의해 형성된 거친 표면 공극은 대기 중의 수분을 포집하는 '미세 저수지' 역할을 수행하며, 입자상 오염물질과 낙엽 분진 등 유기 영양분을 고착시켜 원시적인 형태의 토양층을 형성한다. 필자는 현장에서 채취한 박편 샘플에서 지의류 하부 기질에 미세한 부식토가 형성된 것을 확인하였으며, 이는 이후 선태식물(이끼류, Bryophyta)과 미생물 군집이 정착할 수 있는 유일한 생태적 '인프라'가 된다. 즉, 지의류는 스스로 기질에 상처를 내고 그 틈에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생태적 토대 구축자'인 셈이다. 이러한 초기 정착 과정은 이전 리포트인 [[06] 도심 속 보도블록 이끼의 분석 및 생물 지표]에서 다룬 물리적 정착 기작의 선행 단계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5. 안히드로바이오시스(Anhydrobiosis): 도시 극한 환경의 생존 논리

도심의 하절기 지표 온도는 복사열과 건축물의 단열 효과로 인해 종종 60°C를 상회한다. 이는 대다수 유기체의 효소 대사가 중단되고 단백질 변성이 일어나는 임계점이다. 지의류는 이러한 극한 환경에서 안히드로바이오시스(Anhydrobiosis, 탈수 내성 상태)로 진입하여 생존을 도모한다. 이들은 세포 내 수분 함량이 5% 미만으로 떨어지더라도 특수한 유리전이(Glass transition) 상태를 형성하는 당류와 열충격 단백질(HSPs)을 통해 세포막과 기관의 정밀도를 유지한다.

이 기작은 지의류가 불규칙한 강우 주기와 도시 열섬 현상 속에서도 절멸하지 않고 수십 년의 생애주기를 유지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가 된다. 야간의 결로나 대기 중 습도를 흡수하는 즉시 불과 몇 분 내에 광합성 시스템을 재가동하는 가변적인 생체 리듬은 현대 도시 생태계에서 지의류가 최상위 개척자로 군림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이는 도시라는 인공 공간이 제공하는 스트레스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시스템을 환경의 진폭에 동기화(Synchronization)시킨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극심한 건조 환경에서의 생존 전략은 [[01] 도심 콘크리트 벽면 이끼의 종류와 특징]내용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6. 생물지표(Bio-indicator)로서의 정밀도와 대기 질 모니터링의 효용성

지의류는 별도의 뿌리 기관 없이 체표면 전체를 통해 대기 중의 수분과 무기 영양소를 흡수하는 개방형 생리 구조를 지닌다. 이로 인해 주변 환경의 대기 오염 물질 농도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체내에 축적된 성분을 통해 해당 지역의 장기적인 오염 이력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로그(Log) 데이터'로 기능한다.

필자가 관찰한 종로구 도로변과 남산 녹지대의 지의류 분포 차이는 극명했다. 황산화물(SOx) 및 질소산화물(NOx) 농도가 높은 도로 인근에서는 오염 민감종인 수지상 지의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반면, 대기 순환이 원활한 지역에서는 다채로운 색상의 엽상 지의류 군락이 발달해 있었다. 이는 지의류의 서식 실태를 정밀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도시 환경의 질적 수준을 수치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향후 도시 설계 및 환경 영향 평가에 있어 지의류 모니터링이 필수적인 데이터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기 오염 물질이 선태식물에 미치는 영향은 [[03] 2025년 벽면 이끼 트렌드 (기후 변화, 생태계, 도시환경)]에서 보다 상세히 다룬 바 있다.



[참고 문헌]

Honegger, R. (1991). Functional aspects of the lichen symbiosis. Annual Review of Plant Physiology.
Nash, T. H. (2008). Lichen Bi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지의류 생물학의 고전적 교과서)
Lücking, R., et al. (2021). The 2021 classification of lichenized fungi. Herzogia. (최신 지의류 분류 체계 연구)

[다음 도시 생태 시리즈 예고]

지의류가 닦아놓은 미세한 화학적 균열은 이제 수분을 머금고 더 거대한 물리적 변화를 예고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지의류의 바통을 이어받아 도심 인공 구조물을 본격적인 녹지로 치환하는 [02 지의산의 화학적 부식: 광물 분해 메커니즘 분석]에 대한 정밀 분석 데이터를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