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건축 재질별 이끼 서식 차이 분석 (벽돌, 콘크리트, 자연석)

이끼는 땅뿐만 아니라 건물의 다양한 재질 위에서도 자라며, 그 표면 조건에 따라 생장 방식과 종 다양성, 서식 밀도가 현저히 달라집니다. 특히 벽돌, 콘크리트, 자연석은 도시와 자연 속에서 이끼가 자주 정착하는 주요 기반으로, 각각의 재질은 수분 유지력, 표면 pH, 미세구조 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건축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이끼의 생리적 특징과 종 분포, 생태적 의미를 비교 분석해보며, 건축재와 생물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이끼를 조명합니다.

자연석 위에서 자생하는 이끼
자연석 표면의 불규칙한 요철과 미네랄 성분은 이끼와 지의류(Lichen)의
혼합 군락 형성을 돕는 최적의 생태적 기반입니다. 이는 도심 속 '자연 기반 해법(NbS)'의
핵심 구성요소로 기능합니다. (2025년 12월 18일, 서울시 서초구)

벽돌 위 이끼: 다공성과 보습력이 만드는 이상적 서식지

벽돌은 점토를 고온에서 구워낸 다공성 재료로, 이끼가 자라기에 매우 적합한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표면의 다공성(porosity)으로, 공기 중의 습기나 강수 후 수분을 흡수하고 오래 머금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벽돌은 상대적으로 건조한 환경에서도 수분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어, 이끼의 정착에 유리합니다.

이끼는 뿌리가 없고 수분을 직접 표면에서 흡수하기 때문에, 벽돌과 같이 물리적으로 흡수력이 좋은 재료에 더 안정적으로 붙을 수 있습니다. 특히 담장이끼류(Tortula spp.), 선형이끼류(Bryum spp.), 불이끼류(Grimmia spp.) 등이 대표적으로 자주 발견됩니다.

또한 벽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에 풍화 작용이 일어나 미세한 틈과 균열이 생기는데, 이는 이끼 포자의 착생을 더욱 촉진합니다. 벽돌 담장은 북향일수록 햇빛이 적고 수분 유지가 쉬워, 이끼가 더 풍부하게 서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도심의 오래된 벽돌 건물이나 담장은 도시 생태계에서 이끼가 정착하는 가장 흔한 장소 중 하나이며, 자연적 식생 회귀의 관찰지로도 자주 연구 대상이 됩니다.

최근 도시 생태학 연구에 따르면, 벽돌 담장은 이끼 서식처로서 타 재질에 비해 이끼 확산 속도가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환경연구원에서 실시한 도시 이끼 분포 연구(2022)에 따르면, 북향 벽돌 담장의 경우 단 3개월 만에 이끼 피복률이 15%에서 62%로 증가하였으며, 특히 오래된 붉은 점토 벽돌이 신속한 확산을 유도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벽돌 표면에 미세한 규조류 및 박테리아가 먼저 정착하면서 초기 바이오필름을 형성하고, 이끼 포자의 착생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연 생태계에서의 개척종(Colonizer species) 이론과도 일치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바이오디자인 건축’에서도 주목받고 있으며, 일부 친환경 건축에서는 의도적으로 벽돌에 거칠고 불규칙한 표면을 도입해 이끼 및 지의류의 자연 발생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콘크리트 위 이끼: 알카리성 환경 속 생존을 위한 적응

콘크리트는 시멘트, 자갈, 모래, 물의 혼합물로 구성되며, 제조 초기에는 강한 알칼리성(pH 12~13)을 띠는 재료입니다. 이러한 고pH 환경은 이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태식물에게 생리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콘크리트 표면이 점차 중성 또는 약산성으로 변화함에 따라, 일부 이끼 종은 콘크리트 표면에서도 정착할 수 있는 조건을 얻게 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포자의 발아율이 낮고 기질 부착이 어려우나, 풍화 작용과 이끼 자체가 분비하는 유기산성 물질의 축적을 통해 표면 pH가 점차 낮아지면서 특정 이끼 종들이 서서히 정착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종으로는 바늘이끼(Funaria hygrometrica), 헤드라코마이움속(Hedwigia spp.) 등이 있으며,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빠른 생장과 번식 전략을 통해 생존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콘크리트는 표면 구조가 비교적 매끄럽고 수분 유지력이 낮기 때문에, 이끼는 노출된 평면보다는 미세한 균열이나 음지에 형성된 구조물 하단, 혹은 지면과 맞닿아 상대적으로 습도가 유지되는 접촉부에서 주로 관찰됩니다. 특히 인도 경계석, 교량 받침대, 옹벽 하부와 같은 구조물은 직사광선과 강수의 직접적인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며, 이끼가 정착하기에 유리한 미기후 조건을 형성합니다.

콘크리트 위에 정착하는 이끼는 강한 자외선 노출, 빗물의 직접 타격, 큰 일교차 등 극한의 물리적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종으로 제한되며, 이로 인해 이끼의 종 다양성은 벽돌이나 자연석 표면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대신 환경 내성이 강한 특정 종을 중심으로 한 특화된 군집이 형성된다는 점이 콘크리트 서식 이끼의 특징입니다.

이처럼 콘크리트는 식물 생장에 불리한 조건을 지닌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이끼 종에게는 제한적이지만 의미 있는 희소 서식처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이끼 벽(green moss wall)’을 도시 환경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콘크리트 벽면에 인위적으로 이끼 포자를 도포한 뒤 수경 영양액 공급 및 보습 처리 기술을 결합하여 도시형 공기 정화 시스템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독일 베를린 공대(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에서는 콘크리트 표면에 특정 이끼 종의 정착을 유도한 뒤 질소산화물(NOx) 흡수 효과를 측정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그 결과 기존 콘크리트 표면 대비 이끼 처리면이 약 38% 이상의 공기질 개선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단순한 식생 관찰의 차원을 넘어, 이끼가 지닌 환경 공학적 활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아가 향후 콘크리트 기반 건축물 설계 과정에서 생물기반 복원력(Biological resilience)을 고려한 요소로 이끼의 도입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3. 자연석 위 이끼: 환경에 가장 가까운 서식 조건

자연석은 암석 그대로를 절단하거나 표면을 가공하지 않고 사용한 건축 재료로, 일반적으로 가장 생태적 서식 환경에 가까운 기반으로 간주됩니다. 표면은 거칠고 불규칙하며, 암석의 종류에 따라 수분 보유력과 pH, 미네랄 함량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화강암은 중성~산성, 석회암은 강한 알카리성 pH를 가지며, 이는 이끼의 종 다양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자연석 위에는 다양한 이끼가 정착하는데, 특히 수태이끼류(Hypnum spp.), 폴리트리쿰속(Polytrichum spp.), 디크라눔속(Dicranum spp.) 등 상대적으로 구조가 복잡하고 높은 수분 요구도를 가진 종들이 자라기 쉽습니다. 이들은 주로 산림 주변 또는 경사지에 위치한 자연석 담장, 절개지 등에 서식합니다.

또한 자연석은 수십 년 이상의 풍화를 겪으며 표면에 유기물과 토양이 얇게 형성되기 때문에, 단순한 이끼류뿐만 아니라 지의류(Lichen)와의 혼합 군락도 자주 형성됩니다. 이는 해당 장소가 오랜 시간 동안 교란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생물지표적 가치가 높습니다.

자연석 위 이끼는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고, 계절별로도 다양하게 변합니다. 그 이유는 암석 표면이 제공하는 서식 미세조건이 매우 다채롭고, 일반적인 도시 환경보다 자연적인 수분 공급(이슬, 지하수 유입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연석 위의 이끼는 단독 군락보다는 지의류와 복합적인 군집 형태를 이루며, 이는 지표면 고정 탄소 시스템(Soil Carbon Fixation System)의 핵심으로 작동합니다. 특히 북방산림대나 고산지대에서는 이끼류가 토양 생성과 유기물 축적, 이산화탄소 흡수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자연석을 기반으로 한 이끼-지의류 복합 군락은 1차 생산자+분해자+고정자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이러한 생물군은 도시 지역에서도 응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석재생태복원 시범지’에서 자연석 위에 자생 이끼를 복원하여, 강우 유출 저감, 미기후 조절, 생물다양성 회복의 성과를 보고한 바 있습니다.

자연석 위 이끼는 단순히 경관 요소를 넘어, 도시 내에서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의 실질적인 구성요소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향후 도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물학적 인프라로서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연석과 유사한 다공성 재질인 벽돌에서의 생태적 차이점이 궁금하시다면 [9. 벽돌 담장 이끼 종류와 겨울 정원의 생태학] 글을 함께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끼는 건축재를 생태계로 바꾸는 자연의 설계자

벽돌, 콘크리트, 자연석 위에 자라는 이끼는 단순히 표면을 덮는 식물이 아니라, 각 건축재의 물리적·화학적 특성과 상호작용하며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성합니다.
벽돌은 다공성과 수분 유지력으로 다양한 종이 정착하는 친환경 기반이며, 콘크리트는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내성 중심의 이끼 군락을 형성합니다. 자연석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상태에서 종 다양성이 풍부하게 유지되는 생태적 서식지로 기능합니다.

건물 재질 하나하나가 곧 하나의 생물학적 기반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도시 생태계를 더욱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번 산책길에서는 당신이 지나는 담장의 재질을 살펴보세요. 그 위의 이끼가 들려주는 자연과 생태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된 것입니다.

"자연석, 벽돌, 콘크리트라는 각기 다른 재질 위에서 이끼가 어떻게 정착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 생태적 원리를 현대 건축 설계에 어떻게 세련되게 녹여낼 수 있을까요? [다음 글: 11. 건축가가 주목할 이끼 종류 - 외관 영향과 유지 관리 전략]에서 디자인과 생태가 결합된 미래 건축의 모습을 확인해 보세요."